거짓언론 여론조작으로 촛불난동을 일으켜 "국정농란" 조작용어로 탄핵내란사태가 발생한 국기문란 국체훼손의 위기
박근혜대통령께서는 삼위일체가 된 북괴의 대남공작, 사회주의개헌종북좌파세력, 내각제개헌웰빙보수반역배신역적세력의 난동으로 인해 국가의 근본이 무너지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국민들 특히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의 DNA를 가지고 있는 태극기애국국민들을 깨우셨습니다. 자칭 문민정부라는 위장보수 김영삼때부터 국가의식( 國家儀式 )과 국가의전( 國家儀典 )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태극기, 애국가, 순국선열, 위대한 대한민국의 독립, 건국, 구국, 호국, 한강기적의 역사가 무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건국의 기초인 국부 이승만박사의 국시 반공과 한강기적의 원동력인 박정희대통령의 승공이 김대중의 위장평화전술로 사라졌습니다. 박근혜대통령께서 자유통일을 위한 "멸공"의 개념을 다시금 회복시키자 3세력이 연합하여 난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난동으로 인해 다시금 국가의전( 國家儀典) 과 국가의식( 國家意識)이 대한애국당을 통해서 살아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국가적 의식은 제1대 초대 건국 대통령 이승만박사의 취임식이었습니다. 1948년 5월 31일(월) 제헌의회가 개원되었습니다. 사진 1,2,3 : 첫 제헌의회 모습, 첫 국회의장(제헌의회의장) 이승만박사께서 평양남산현감리교회(현재 인민대학습당) 제13대 담임목사(후임이 송정근목사, 본인 처의 외조부)로 조만식선생(산정현장로교회 장로) 대신에 월남시킨 이윤영목사에게 개헌식 기도를 시키심. 1948년 7월 17일(토) 제헌헌법과 국호 대한민국이 제정되었습니다. 사진 4 : 국부 이승만박사 헌법 서명 사진 5 : 헌법공포를 중계방송한 기자들과 기념촬영(언로련에 장악되어 내란의 선봉이 된 모든 언론은 최소한 사형) 사진 6 : 헌법기록물 사진 7 : 헌법 관보 1948년 7월 20일(화) 헌법에 따라 제헌의회에서 대통령, 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사진 8 : 국부 제1대 건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박사 선출 당시 양복을 입으신 모습 1948년 7월 24일(토) 10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