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8월 15일(주) 11시 중앙청, 건국식 역사사진을 시간대별 배열과 설명.

2018년 8월 15일(토) 1:30 서울역, 제70주년 건국절 행사를 최초로 공당인 대한애국당 주최로 제1회 기념식을 개최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희귀 동영상 4개를 발굴하여 공개하면서 건국식을 기념했습니다.

이번에는 각종 역사 기록 사진을 발굴하여 설명과 함께 시간대 별로 배열하여 게재합니다.

아마 영상에 본 장면들을 사진으로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1 : 맥아더원수 김포공항 도착, 하지군정사령관 영접,
국부 대신에 국무총리 철기 이범석이 환영,
맥아더원수는 도착 연설에서 나는 캘리포니아와 내 조국을 지키듯 한국을 지키겠다선언했는데, 2년 후 6.25 기습남침 때 약속을 지킴.
 사진 2 : 김포공항에서 맥아더원수와 국방경비대사령관 송호성중령.


송호성은 준장(일종의 향토예비군 대장 좌천) 때 1950년 6.25 기습남침 후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한강철교가 끊어진 핑계를 대고 월북하여 북침선전을 한 매국노임,

즉 건국 당시부터 북과 내통한 간첩이 남한 내에 득실거렸으니 그 와중에 건국 구국은 국부의 엄청난 지혜와 능력을 반증합니다.
사진 3 : 맥아더원수 국방경비대 사열.
사진 4 : 남대문에 慶祝(경축) 현수막, 大韓民國政府樹立萬歲(대한민국정부수립만세, 만세가 약자로 기록됨)과 글씨를 보기 위한 글로즈업
 
사진 5,6 : 중앙청 세종로의 축하 현수막

慶祝(경축) 大韓民國政府樹立(대한민국정부수립), LONG LIVE! THE REPUBLIC OF KOREA, 흑백과 컬러화.

사진 7 : 국부 이승만박사와 맥아더원수의 영접을 준비하는 국방부 육군본부 군악대(헬멧의 마크), 당시 군악대장이 원용덕중령(아시는 분 사실 확인 바람, 49년 8월에는 보직 확실함)
사진 8 : 맥아더사령관 차량 중앙청 진입
사진 9 : 맥아더사령관 중앙청 도착, 오른쪽 상단 군악대를 지휘하시는 육군군악대장 원용덕중령(사실 확인 바랍니다. 49년 8월에는 확실히 군악대장 복직임)
사진 10 : 국부 이승만박사 맥아더원수 형제지간의 쌍수 환영.

이 사진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6.25 기습남침 때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 수원에 왔을 때 만나는 장면이라고 오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진 11 : 맥아더원수 부부 영접 환영
사진 12 : 국부 이승만박사 우측 김구(건국 직전 남북연석회의 참석, 건국을 방해하는 이적행위로 표정이 심각함)좌측 이시영부통령,

그러나 이 Korea Times 보도 사진은 건국식 때 사진이 아님. 심각한 역사 왜곡으로 오류 추적 중.

사진 13,14,15,16,17 : 국부맥아더원수하지사령관 소개 환영과 컬러화글로즈업
사진 18,19 : 좌우를 반대로 인화한 오류
사진 20,21 : 꽃다발 증정, 맥아더와 하지에게 먼저 증정하고 국부께서 나중에 받으심
이시영부통령이 축사를 할 때입니다. 빈 의자에 李副統領(이부통령)이라고 쓰여있습니다.
하지사령관 팔에 하트모양의 24군단 마크
도대체 무슨 대화이길래 국부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맥아더는 심각한 표정일까?
수수께기를 곧 풀어낸다!
사진 
22,23,24,25,26,27,28 : 소개 후 착석 담소 모습들과 컬러화, 
사진 29 : 축하식 개막으로 준비위원회회장 오세창(85독립선언서 서명 유일한 생존자) “이제부터 개회합니다” 선언하시고
오세창 대신에 審計院長(심계원장감사원장명제세가 개회사 대독하고맥아더원수의 축사 모습.

축사 내용 

정의의 군대가 용진하는 이 시각에 그 승리는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인위적 장벽과 분단으로 무색해졌다면서 이 장벽은 반드시 무너져야 하며무너질 것이다
자유국가의 자유로운 한국인들의 궁극적인 통일을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북진멸공자유평화통일에 대한 예언적 연설

사진 30 : 축사 후 부부에게 각각 꽃다발과 250년 된 향로를 윤치영내무장관이 증정,

항상 근엄한 맥아더원수의 천진난만하게 어린아이처럼 감격하고 기뻐하는 모습.

1895
년 10월 맥아더원수 부친 필리핀 총독 맥아더장군께서 고종황제에게 선물로 받았던 향로를 맥아더원수가 유산으로 받아 가지고 전쟁에서 가는 곳마다 승리한 승리의 상징 유물이었는데

1941년 12월 일본군의 기습 필리핀 공격 때 철수하다가 부관이 레이테해변에서 분실하였습니다


국부께서는 맥아더사령관을 건국식에 초청하면서 전국을 수색하여 250년 전 당시 조선의 도공이 만든 
2개 중에 하나를 찾아서 다시 선물한 것입니다
사진 31,32 : 국부 이승만박사께서 건국신 연설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시는데 맥아더원수가 예의를 갖춰 일으켜 주시는 모습과 클로즈업 모습.
사진 33 : 국부 이승만박사께서 11시 22분 특설단 등장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 두루마기를 입으심
사진 34 : 대통령 선서를 하시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하 연설로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民國(국민)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여 축하하는 것이라고 연설하심,
1948년부터 광복절과 건국절은 쌍둥이 경축일임을 선포.
사진 35 : 국부 이승만박사께서는 기념사 마무리에서 삼일운동을 계승한다고 연설하심.
왜냐하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주관 실행하신 분이 이승만박사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36 : 삼일운동을 이승만박사가 주도했다는 당시 총독부 내무장관 우사미의 회의 발언을 듣고 비밀리에 보고서를 작성한 문서.
애국가 제창 장면 추정
                                                  컬러화 사진
                                                모두가 만세 삼창
사진 37,38,39,40,41,42 : 건국식 전경 흑백과 컬러화
사진 43 : 건국식에 운집한 태극기대한애국국민들. 만세 삼창, 대한민국 만세!!!
사진 44 : 건국식 후 국방경비대의 분열을 참관하시는 국부 내외, 성조기 자유중화민국기 등 만국기 장식
사진 45 : 건국식 축하 태극기대한애국혁명 대한애국당의 행진코스인 서울역 광화문카 퍼레이드 등 거리행진 모습.
사진 46 : 여성단체의 대형 태극기 행진(과연최초의 태봉(태극기여성봉사단)일까요?)
사진 47 : 일반학자들은 1945815() 해방 이후 광복절 축하라고 게재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고,
 
국가역사기록원에는 건국식 때 경축 전차 장식으로 되어있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님.
 
즉 건국 직전 531() 첫 제헌의회 국회 개원식 경축임,
 
팩트 체크, 사실 확인, 앞부분에는 慶祝(경축) 自主獨立萬世(자주독립만(한자 약자))가 쓰여있고,
 
뒤 전차에는 國會開院式(국회개원식)이라고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음.
 
즉 독립은 국민의 주권이 행사된 제헌의회선거로 선출된 제헌의회가 성립되었기 때문이고,
 
제헌의회에서 대한민국 국회제정, 헌법 제정, 초대 대통령 부통령 선출이 되어

7
19일 초대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이 되었으며
 
온전한 입법 사법 행정부가 성립되어 행정수반 이승만대통령이 주관하는 첫 행사 즉 건국식(정부수립식)1948815()에 개최된 것입니다.
사진 48,49,50 : 관보에 실린 국부 이승만박사의 기념사 등 기사


사진 51 : 건국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 결합, 이상으로 초대 건국절 기념식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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