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 이승만박사의 마지막 기도.
국부 이승만박사는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
자진 하야를 하시고, 하와이에서 요양생활 중 매일 식사 전에 하시는 기도를 양자 이인수박사님의 증언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것을 토대로 이승만청년, 이승만박사, 국부 이승만대통령의 기도의 역사를 추적하고 합니다.
1960년 5월 29일(주) 출국하시어
1965년 7월 19일(월) 소천하실 때까지 5년 2개월 정도를 하와이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실 때에 매일 식사 때마다 똑같은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사진 1 : 1960년 5월 29일(주) 아침에 이화장을 출발하시는 모습.
사진 2 : 구경 나온 시민들
사진 3,4 : 이화장 출발 후 집 앞에서 노는 어린이들과 경찰 경비
사진 5 : 시내를 지나는 모습.
“망명, 쫓겨났다”라는 용어는 모두 비난 폄하 왜곡을 거짓언론선동입니다.
국부 이승만박사는 1-3개월 정도 요양하시려고 하와이로 출국하셨습니다.
여행 가방 2개가 전부였습니다.
사진 6,7 : 미국 전세기 탑승 직전
하야하신 국부의 국내 존재에 부담을 느낀 허정 내각수반과 환율정상화(대한 지원금을 절반으로 하향 조정하는 등)와 같은 미국의 전략적 간섭에 걸림돌이 되는 국무부와 CIA의 공작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진 8 : 1960년 5월 29일(주) 요양 차 출국하여 하와이에 도착, 영접을 받으시는 모습.
사진 9 : 1961년 3월 26일(주), 하와이에서 86세 생일을 맞이 하시는 모습.
사진 11 : 1961년 5.16혁명으로 고국 행이 무산되자 급속히 건강이 악화, 1962년 6월 19일(화) 퀸스병원 입원 모습
사진 12,13 : 퀸스병원에서 마우나리나 요양병원으로 이송되어 생활 중의 모습.
하와이 요양 기간이 지났지만 당연히 민주당정권과 미국 정부는 국부의 귀국을 국내 사정을 이유로 차일피일 연기했고, 급기야 5.16혁명으로 지체되었던 것입니다.
혁명정부도 반대파를 의식하여 국부의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비행기를 탑승하여 귀국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진 14 : 병원에서 읽으시던 영어성경
사진 15 : 건강상 비행기 탑승을 불허한 주치의 박만상박사
사진 16 : 1964년 급속히 악화된 모습
사진 17 : 1965년 3월 26일(금) 90세 생일을 맞이하신 국부께서 식사 기도를 하시고,
프란체스카영부인의 도움을 받아 음식 드시는 장면.
매일 매일 식사 기도는 항상 똑같았습니다. ①일용 양식 주시고,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②그런데 제가 이제는 심신이 허약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북진자유평화통일, 미국을 능가하는 초 인류강대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③이제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축복해 주소서(특히 북괴 공산정권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을 하루 속히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사진 18 : 아마도 임종을 준비한 국부에 대한 마지막 모습,
눈이 거의 감기셨지만 그 분의 마지막 유언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 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바라옵건데,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나이다.
우리 민족이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갈라디아서 5:1 "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국부 이승만박사의 마지막 유언 기도는
66년 전 24세 이승만청년의 첫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국부 이승만박사의 평생 기도. ①1895년 2월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아펜젤러 헐버트 벙커 노블 등 선교사들을 만나서 학교 채플과 주일예배 시간에 참석하여 기도를 들었습니다.
사진 19 : 1896년 5월 21일(목) 오후 3시 경, 아펜젤러선교사가 서재필박사를 강사로 초청하여 첫 번째 목요강좌(채플)를 시작할 때, 뒤에 중절모자를 쓴 서재필과 왼쪽에 개량복장을 한 청년 이승만으로 교사 겸 학생회장(21세).
그런데 이승만 자신이 처음 기도를 직접 한 것은 1899년 2월 2일(목) 경입니다.
1898년 3월(1차) 6월(2차) 11월(3차) 만민공동회를 주도하면서 대한제국 개혁을 하던 중 3차 대한문 태극기 집회를 한 달여 동안 주관했습니다.
사진 20 : 만민공동회에서 사회를 보는 이승만청년과 이상재선생, 이 때 이승만을 도와준 감리교 선교사들의 기념사진.
사진 21 : 대한민 태극기 집회.
1899년 1월 9일(월) 반역죄로 체포 투옥되었습니다.
사진 22 : 처음 투옥된 서소문 임시 감옥.
1899년 1월 30일(월) 몰래 반입한 육혈포(권총)를 가지고 탈옥했다가 다시 총기 소지 탈출죄로 투옥됩니다.
1899년 2월 2일(목)경 한성감옥에서 10kg의 칼을 차고 사형(죽음)의 위기를 맞이하자 처음으로 아펜젤러선교사님의 설교를 기억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하나님 우리나라와 민족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즉 회심을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사진 23,24 : 당시 칼을 찬 죄수의 모습,
사형수는 12kg, 무기수(종신형)는 10kg, 유배수는 8kg의 칼을 찾는데, 이승만청년은 무기수로 10kg 짜리를 착용했습니다.
사진 25 : 1900년 2월 22일(목)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 생일기념과 한반도의 국부로 키우려는 이승만청년의 회심 제1주년을 기념.
미국의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 복장을 한 감리교 선교사들(왼쪽부터 노블선교사, 벙커선교사, 아펜젤러선교사, 존스선교사).
이후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사형을 면하고, 무기징역(종신형)을 받아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선교사들의 돌보심으로 성경과 각종 기독교서적 전문서적 세계적 시사 잡지 등 약 600권 분량을 독파하면서
“독립과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 건국”이라는 비전과 使命(사명)과 天命(천명, Tien Ming, The Mandate of Heaven)을 품게 됩니다.
사진 26 : 1903년 2월 22일(주) 회심 제4주년과 월남 이상재선생을 전도하여 회심시킨 기념.
이후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사형을 면하고 무기징역(종신형)을 받아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선교사들의 돌보심으로 성경과 각종 기독교서적 전문서적 세계적 시사 잡지 등을 약 600권 분량을 독파하면서 “독립과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 건국”이라는 비전과 사명을 품게 됩니다.
사진 27 : 1903년 3월 20일(주), 존스선교사가 편지를 통해서 이승만청년에게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 비전"을 심어줄 때 감리교 선교사들 모임.
왼편으로부터 앞 줄, W.B맥길, W.A.노블, D.H.무어 , W.C.스웨어러, E.M.케이블, S.A.벡, 뒷 줄, J.Z.무어, D.A.벙커, C.크리켓트, H.존스, C.D.모리스, A.L.벡커, R.A.샤프.
사진 28 : 1904년 6월 29일(수) 감옥에서 독립정신을 저작한 탈고 기념
사진 29 : 독립정신의 마지막 결론 부분
사진 30 : 독립정신의 마지막 결론 부분(언더우드선교사 사진 게재하고, 기독교신앙자유 미국식 민주주의국가 건국 비전)
사진 31 : 1910년 출판본.
이때부터 이승만은 일평생 국내외 정적들로부터 암살 비난 모함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감사의 기도로 고난을 헤쳐 오셨습니다.
②이승만청년은 감옥에서 기도와 말씀과 학문을 연구하던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일평생 헌신할 使命 즉 天命(The mandate of Heaven)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이승만을 키운 선교사들의 조선에 대한 비전이기도 했습니다.
당대 모든 선교사들이 이승만과 직접 간접으로 도움과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습니다.
1904년 8월 9일(월) 출옥을 하고, 11월 3일(월) 미국 특사와 함께 유학을 떠날 때 당대의 유명한 선교사들로부터 19통의 추천서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사진 34 : 1904년 11월 3일(목) 유학 출발 당시 언더우드선교사가 타이핑한 추천서.
즉 이때부터 이승만청년, 이승만박사, 국부 이승만대통령의 평생 기도는 순간순간 “사명을 감당할 지혜와 능력”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③이승만에게는 일본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는 조선과 대한제국을 직접 목도하면서 오직 “나라와 민족”만을 위한 일생이었습니다.
회심 이후 단 1초와 단 1$ 1원도 사사로이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독립과 건국과 북진자유평화통일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3번째 기도는 단 한 순간도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장수와 부귀와 영화와 명예가 아니라
당대 모든 선교사들이 이승만과 직접 간접으로 도움과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습니다.
1904년 8월 9일(월) 출옥을 했습니다.
사진 32 : 출옥 직전, 안국선과 이승린과 함께
사진 33 : 에비슨선교사(제중원(세브란스병원) 원장)가 이승만 석방을 영접하는 장면.
1904년 8월 9일(월) 출옥을 하고, 11월 3일(월) 미국 특사와 함께 유학을 떠날 때 당대의 유명한 선교사들로부터 19통의 추천서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사진 34 : 1904년 11월 3일(목) 유학 출발 당시 언더우드선교사가 타이핑한 추천서.
즉 이때부터 이승만청년, 이승만박사, 국부 이승만대통령의 평생 기도는 순간순간 “사명을 감당할 지혜와 능력”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③이승만에게는 일본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는 조선과 대한제국을 직접 목도하면서 오직 “나라와 민족”만을 위한 일생이었습니다.
회심 이후 단 1초와 단 1$ 1원도 사사로이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독립과 건국과 북진자유평화통일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3번째 기도는 단 한 순간도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장수와 부귀와 영화와 명예가 아니라
“한민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세계 모든 만민들에게 유익을 주고, 복을 끼치는 복의 근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세계 제일의 민족이 되게 해 달라”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였습니다.
특별히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지만 소련 공산주의의 책동으로 분단이 되고,
대한민국을 건국했지만 6.25동란까지도 겪게 되자 이때부터는 항상 “공산독재정권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의 자유와 구원을 위한” 기도가 추가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했지만 6.25동란까지도 겪게 되자 이때부터는 항상 “공산독재정권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의 자유와 구원을 위한” 기도가 추가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면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이라면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면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동일한 기도를 매일 식사 때만이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 35 :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으시고 제헌헌법에 서명하시는 모습.
사진 36 : 1948년 8월 15일 건국식 때도 흰옷을 입으심.
사진 34 : 6.25동란 당시 국부 이승만박사께서 부산에 피난 온 목회자와 장로, 그리고 영호남지역의 목회자와 장로를 초량교회에 모이게 하여 직접 기도회를 인도하시는 모습.
사진 37 : 기도회 후 목회자 장로 기념촬영.
사진 38,39 : 1954년 3월 26일(금) 제79회 생일 때 외교문서를 타이핑하시는 모습.
사진 40 : 1957년 2월 17일(주) 대한민국 영적 국부이시면 평생 스승이신 헐버트선교사 양화진 묘지 방문, 기도하시면서 미래에 대한 영감을 얻으시는 모습.
사진 41 : 1958년 3월 23일(주) 육군교회, 제83회 생일 직전. 주로 정동제일교회와 군인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심.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지만 소련 공산주의의 책동으로 분단이 되고, 대한민국을 건국했지만
6.25동란까지도 겪게 되자 이때부터는 항상 “공산독재정권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의 자유와 구원을 위한” 기도가 추가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면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동일한 기도를 매일 식사 때만이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국부의 유지를 이어받아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며 기도하는 지도자는 조원진의원이십니다(사진 39).
그리고 그를 위해 수 많은 중보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 동영상, 1960년 3월 26일(토), 제85회 생일 기념 행사, 고국에서 마지막 행사가 되었습니다.
태극기 집회 애국가 열창과 같은 감동적인 동영상 꼭 시청바랍니다.
안익태의 장엄한 실외 Korea Fantasy가 연주되고 나서 군중들이 모두 기립하여 애국가 제창을 하는데 무척 감격스럽습니다.
링크주소를 복사해서 유투브로 시청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MqhWUdigVA
링크주소를 복사해서 유투브로 시청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MqhWUdigVA










































귀중한 자료들을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 가서 다른 분들에게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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