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웰빙 보수와 진짜 보수우파의 분명한 기준!
위대한 대한민국의 정체성 정통성을 이어가는 진정한 보수우파의 증거 중에 하나는 국부 이승만박사에 대한 호칭입니다. "국부( 國父 , Founding Father )"라는 존칭에 대해서 태양 수령 어버이와 친한 종북좌파는 거품을 뭅니다. 저들이 워낙 완강하게 반발하고, 전교조에 의해서 세뇌된 청년들도 동조하기 때문에 우파라는 자들도 논쟁과 싸움을 피하거나 부정적인 역사에 영향을 받은 의식이 한 편에 자리잡고 있어 굳이 "국부" 호칭을 사용하지 말자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협입니다. 타협하는 이상 저들은 집요하게 "왜곡된 역사"를 정의와 진실로 주장합니다. 국부라는 용어는 놀랍게도 대한민국이 건국되지 전부터 해방 후 귀국하여 건국 활동을 하시는 이승만박사에 대한 한민족 백성들의 칭호였습니다. 1957년 11월 군산과 장항을 방문하셨는데, 전라도 백성들이 환영식 현수막에 기록한 호칭도 국부였습니다. 1961년 4월 26일 이승만박사께서 하야 직전에 미국의 매키나기대사와 대화를 하셨는데, 매키나기대사는 스스로 하야를 결정하신 이승만대통령을 스스로 대통령직에 물러난 죠지 워싱턴과 같이 "국부"라고 존경을 표했습니다. 국부 이승만박사에 대한 조직적 지속적 조작과 왜곡은 해방 당시 부터 소련이 정통성이 없는 꼭두각시 정권으로 김성주를 김일성장군으로 등장시키는 우상화 작업과 동시 시작되었습니다. 군일 엘리트 박정희에 대한 군부 내의 모함은 1953년 11월 17일 국부 이승만박사께서 준장 진급과 동시에 미국 포병학교에 최초로 장군으로 유학을 파견하려고 할 때 방해가 시작되었습니다. 1957년 경무대의 실세로 장성 진급까지 좌지우지하던 이기붕의 심복으로 곽영주경무관(33세)가 경쟁상대로 군부 선후배 동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은 박정희준장(40세)의 소장 진급을 방해할 때도 모함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1961년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