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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좌파의 저능아적 자기증후군과 태극기대한애국혁명의 위엄과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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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1 : 조원진대표님의 미국 워싱턴 DC와 LA 방문을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그 동안 거짓과 불의와 배신과 반역과 종북좌파독재에 대한 분노의 항거가 힘이 되어 지금까지 인내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왔습니다. 이제 언론의 거짓, 배신의 진실, 종북좌파의 저능(정신박약)아적 자기증후군의 반역행태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고, 그들의 지랄병을 국민들과 청년들이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1 : 박근혜영애가 최초 정치가로서 등장하게 된 것은 영부인 역할을 하시기로 의결된 1974년 11월 19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22-23일 미국의 포드대통령 내외의 국빈방문을 영접한 것입니다. 사진 2 : 박근혜영애가 최후 정치가로서의 역할은 1979년 10월 16일 박정희대통령각하와 싱가포르 리콴유수상의 정상회담을 통역하고 국빈방문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 때부터 싱가포르 리콴유수상은 박근혜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셨습니다. 싱가포르 건국 당시 중국인이 70%였고, 그 중에 대부분이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리콴유는 당내의 공산주의 세력을 차근차근 척결하고, 싱가포를를 국민들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지지를 버리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 리콴유가 터득한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저능아(정신박약아)적 자기 증후군"이었습니다. 즉 저들을 압박하고 코너에 몰면 아주 상식 이성 양심이 마비된 저능아적인 언행을 하게 되고, 이것을 보고 국민들이 돌아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진 3,4 : 싱가포르의 건국과정을 쓴 자서전 The Singapore Story와 이 부분을 다룬 챕터 첫 머리에 나오는 문귀 캡쳐. 사진 5 : 2006년 5월 20일 리콴유수상 방한 박근혜당대표 만남, 하얏트호텔 사진 6 : 2008년 7월 15일 박근혜당대표 싱가포르방문 리콴유수상 만남, 이 때 일주일 동안 고촉동전수상, 동갑내기 절치 리세룽수상과 함께 정치수업을 하셨습니다. 사진 7 : 2015년 3월 29일 리콴유수상 장례식 사진

평양연설 비교, 국부 이승만박사와 지랄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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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차 임시수도였던 부산 태극기대한애국혁명 * 1950년 10월 29일(주) 오전 11시 평양시청 앞 국부 이승만박사 환영 평양 입성 환영식과 평양탈환 념식. 약 30만명의 평양 시민들이 48년 7월 이후 2년 동안 몰래 숨겨놓았던 태극기를 들고 나와 집회 참석. 국부 이승만박사의 연설문 일부(현재까지 전문을 찾지 못했음) 김광섭비서관의 속기록 문서 해독. “우리는 단군의 후손으로 모두 형제요, 한 핏줄이나 다시는 서로 헤어지지 말자! 한 덩어리로 굳게 뭉쳐서 공산당을 몰아내고, 기어이 남북통일을 완수하여 우리 삼천리 강토에서 영원무궁토록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힘을 합쳐서 살아가자! 우리는 고대로부터 독립된 나라이니 완전무결한 독립을 되찾아야 하며, 죽을 수는 있어도 자유권을 포기할 수 없으며, 더욱이 우리 민권의 자유만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피를 흘리며 싸워서 자유 독립국을 세운 것이니 어느 나라도 들어와서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우리가 간섭 받을 이유도 없고 받지도 않을 것이다. 남북 동포가 오직 한 덩어리가 되어서 통일된 민족의 기상과 의지로 내 나라를 만들어 새 생활을 하자. 모두 함께 生死(생사)를 함께 하며, 이 강토를 우리끼리 지켜야 할 것이니 과거의 잘못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자. 이제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고 또 뭉쳐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4천년을 이어 내려온 한 혈족(血族)으로 아무리 어렵고 가난해도 있는 것은 서로 나누어 쓰고,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 돕고 양보하여 하나로 굳게 뭉치자.” 사진 1 : 맥아더원수 평양 도착, 워커장군이 영접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