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을 박근혜통일대통령과 JTK와 태극기 국민이 완성한다.

태극기 국민운동은 최후전쟁 역사전쟁 통일전쟁!
* 제목 : 감옥에서 탄생한 위대한 대한민국은 내란 반란을 제압하고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로 나갈 것이다.
* 부제 : 국부 초대 건국 대통령 이승만박사(정동제일교회 장로, 1956년 장립, 1958년 은퇴 원로장로)의 중요한 일생과
위대한 대한민국 건국 구국 호국 한강기적 흥국 부국 선진국 선교국의 기적과 통일 비전,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뿌리입니다.
뿌리에서 현재라는 줄기와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나오고,
미래라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과거 역사의 뿌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상황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분별할 수 있으며,
장차 다가올 미래를 예리하게 통찰하고 예측하여 잘 준비하므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대한민국을 건국한 하나님의 사람 국부 이승만박사의 일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진 1 : 1948년 건국 당시 세계 공산화 과정 중의 세계 지도에서 한반도,
국부 이승만박사와 국민들 대한민국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단숨에 증거 하는 그림(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건국된 약 140개국들은 모두 공산화되거나 공산주의 혁명(빗줄 친 부분, 제대로 다 표시하지 못함)을 겪었음).
국부 이승만박사와 대한민국의 뿌리는 조선의 선교사들이었고,
특별히 이승만청년을 키운 아펜젤러 등 감리교선교사들이었습니다.

1902년 6월 11일(수) 일본제국에 의해 세월호와 같이 선박사고로 위장한 것으로 추정하는 아펜젤러선교사 순교 이후에는 언더우드와 같은 장로교선교사들도 큰 역할을 하고 많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사진 2 : 1902년 6월 9일(월) 목포 성경번역회의에 모여서 기다리던 중 아펜젤러선교사 사고 소식을 듣고 침통해 하는 먼저 모인 언더우드 레이놀즈 게일선교사.

사진 3 : 1903년 아펜젤러선교사 대신 감리교 존스선교사가 참석하신 모습(아펜젤러선교사를 생각할 때마다 침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885년 4월 6일(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선교사가 인천 제물포에 도착하여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촬영한 여러 사진들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내용을 담고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진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면서 이승만청년, 이승만박사, 국부이승만대통령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통한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를 추적하고,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까지 통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펜젤러선교사의 도착 첫 기도입니다.

"그 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 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사진 4 : 아펜젤러선교사 양화진 묘비에 새겨진 기도문(시체는 없고 묘비만 모심).
올해 132년만 정말 선교사들이 키운 이승만박사를 통해서 건국한 대한민국은 현재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자유와 빛을 누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은 12년째 공항서비스 세계 1위로 이 공항을 통해 자랑스러운 한국교회의 후원과 위대한 대한민국 위상을 가지고 전 세계에 나가 활동하는 선교사들이 현재 30,000명입니다.

반대로 北傀(북괴, 북한의 모든 것은 거짓이기 때문에 가장 이해가 쉬운 개념)군상주의군사독재3대세습우상사교집단의 70년 세뇌 억압 가난 어둠 감옥 지옥정권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찾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탈북자들도 30,000명입니다.

사진 5 : 14호 요덕 정치범 수용소 모습
(일본 조총련 계를 통해 입수한 정보 자료, 한일정보보호협정이 필요한 이유).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시장경제를 통해 일인당 GNP 30,000$를 달성했습니다.
국부 이승만박사의 세계사적 통찰로 역사상 최강대국과 최약소국이 대등한 동맹관계를 맺은 한미혈맹으로 현재 기독교 신앙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주둔한 미군 병사들이 30,000명입니다.
                                                   사진 6 : 1953년 10월 1일 조약체결 모습.

1956년부터 국부 이승만박사는 북괴와의 체제경쟁과 효율적인 한강기적의 강대국을 성취하여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핵에너지 강국을 구상했습니다.

                                  사진 7 : 핵물리학자 시슬러박사를 초청하여 대화를 나눔,
1959년 국부 이승만박사는 드디어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사진 8 : 기공식,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발전기술은 세계1위이며,
원자력발전소 수출국으로 원자력 세계 4대 강국입니다.
전력 총생산량이 1억kw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밝은 빛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력 인프라가 세계 최고로 전력손실이 거의 없어 전력의 질도 최상으로 급속충전이 됩니다.

                   사진 9 : 2015년 1월 9일 남북한 체제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위성사진.
1866년 9월 2일(주)경 토마스선교사가 대동강 쑥섬에서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사진 10 : 순교 그림.
1893년 윌리엄 홀선교사가 토마스선교사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가 선교하셨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 때에 홀선교사가 청나라병사 일본병사 평양시민 등 여러 부상 환자들을 돌보다 질병으로 순교하신 피와 눈물과 땀의 씨로 시작된 평양 최초의 교회가 남산현감리교회입니다.
                                  사진 11 : 홀선교사가 평양에서 활동 당시 거지를 돌보는 모습.
  사진 12 : 홀선교사의 뒤를 이어 윌리엄 노블선교사가 평양 최초 벽돌식 건물 교회 건축,
1902년 당시 남산현감리교회는 한반도 최대교회로 2000명 회집했습니다.
1904년 홀선교사 순교 10주년기념으로 노블선교사는 원산부흥회의 주인공 하디선교사(홀선교사가 부산에 도착했을 때 안내와 정착을 맡은 인연이 있음)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개최했는데,
이를 통해서 동방의 예루살렘교회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구국 지도자들을 배출했습니다.
1945년 해방 당시 한반도 최대교회였던 남산현감리교회 제13대 담임 출신이신 이윤영목사는 이승만박사께서 통일을 염두에 두시고 국무총리로 세우기 위해 월남을 시켜 제헌의원이 되었고,
첫 제헌의회 때에 대표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사진 13,14 : 이윤영목사와 제헌의회 속기록 기도문.
불행하게도 북한지역은 소련 공산주의 꼭두각시 정권이 세워져 지금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노예와 지옥국가가 되었습니다.
                                                         사진 15 : 굶주림의 북한 어린이.
기독교를 박해하고 말살하려는 사악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공산주의정권으로 인해
북한지역은 에너지 고갈, 모든 인프라 붕괴, 산림자원(자연), 25,000,000명 한민족의 몸과 영혼까지 무참하게 황폐화되었습니다.
                     사진 16 : 1911년 한일합방 후 한반도 자원 착취를 위해 제작한 삼림지도,
                                                 사진 17 : 2015년 남북한 삼림지도

(국부 이승만박사와 박정희대통령의 삼림녹화 사업 성공으로 완전히 삼천리 반도 금수강상 회복,
인류 역사상 최초 50년 만에 산림황폐화를 원상으로 회복한 기적을 창출, 반대로 북한은 조속히 회복를 시도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황폐화).
그나마 있는 모든 자원과 재원을 체제유지를 위한 대내외 협박용으로 핵과 생화학무기 개발에만 투자하여 국가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사진 18 : 핵 개발 모든 것을 망가뜨린 3대 세습의 어리석고 미련한 지도자.
민족과 역사와 언어와 문화와 기후와 자연환경과 모든 것이 똑같은 한반도에 선교사들이 키운 지도자와 기독교를 박해하는 어리석고 사악한 지도자의 차이 하나가 이렇게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사진 19 : 1945년 10월 14일(주) 평양 기림리운동장에 등장시킨 김성주(가짜 김일성장군).
모스크바에서 보낸 연설문을 감시 배후조정 역할을 하는 고려인 2세 미하일 강소좌가 번역한 쪽지를 읽는 장면.
연설 핵심내용은 “친일파”라도 공산주의정권에 참여하면 민족주의자로 대우한다,
즉 정권참여반대하면 모두 친일파 친미파로 인민재판하여 숙청.
사진 20 : 1945년 10월 16일(화) 이승만박사 입국, 중앙청 환영식 연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국부 이승만박사의 통치행위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인재 발굴 인재 배출 인재 양성입니다.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된 2,000명(국방안보를 위한 군인 엘리트 200명, 산업발전을 위한 핵분야 최고 과학 엘리트 237명)에게는 직접 150$(당시 한 달 생활비)를 쥐어주면서 훈시하고 유학을 보냈습니다.
놀랍게도 한강기적을 완성한 군인출신 박정희대통령은 국부께서 3번씩이나 사형 파면 예편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아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사명을 품게 되었습니다.
6번 중에 5번씩이나 직접 대면하여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키운 최고 인재였습니다.
사진 21 : 남로당 체포 직전 박정희소령(옆에 있는 송호성장군은 6.25 동란 중 월북한 배신자).
남로당 가입으로 사형 위기에 처했지만 공산당 활동 전적이 없고,
이미 북한지역을 답사한 동료 장교의 말을 듣고 전향한 박정희소령을 국부께서 인재를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고 유일하게 사면시킴.
          사진 22 : 제9사단 정예부대 재 창설식 때 국부의 훈시를 듣는 참모장 박정희대령,
                      사진 23 : 1953년 12월 24일 국부께서 준장으로 진급시켜 미국 유학 때, 1954년 1월 SF에서 여행 중 앨라바마(Fort Sill 포병학교 고급반) 기차행 직전.
                      사진 24 : 유학 후 1955년 11월 인재 관대리, 제5사단장 때 국부와 만남.
1956년 1월 폭설 인해 1개 중대병력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예편을 각오하고 심사를 받았으나
국부께서 “이건 人災(인재)가 아니라 天災地變(천재지변)이야! 人才(인재)를 함부로 버리면 안 돼”하시고 복권시키심.
사진 25 : 1957년 11월 국부께서 경무대 곽영주 등 경쟁 상대들이 준장으로 예편시키려고 극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소장으로 진급시킴.
1961년 5.16혁명 성공 후 8월 14일 중장 진급 직전 박정희소장 공식 사진.
                              사진 26 : 3번의 위기에서 살아난 박정희대통령의 사명,
사진 27 : 세계사적 천재 국부 이승만박사가 키워 한강기적을 완성한 아시아의 인재 박정희대통령.
국부 이승만박사의 일생 자체가 모든 선교사들로부터 전폭적인 사랑과 지원을 받아 키워진 세계사적 기독교 인재였습니다.
국부의 인재 발굴, 인재 양육은 필생 과업이었고, 통치과정에서 늘 인재가 없음을 한탄하셨습니다.
1895년 2월 배재학당에 교사 겸 학생으로 입학할 때부터 최고 인재로 간파한 아펜젤러 노블 벙커 헐버트 등 선교사들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사진 28 : 1896년 5월 21일(목) 오후 3시경 정동감리교회(배재학당 채를 이용), 서재필박사와 함께 21세 이승만청년 단발령 기념(오른편 청년).
1897년 7월 수석 졸업생으로 조선의 독립(The Independence of Korea)이라는 주제로 장안의 모든 고관대작과 외교관들이 모인 졸업식에서 영어 연설을 했습니다.
졸업 후 한바도 최초 일간지 매일신문을 창간하고, 제국신문도 발행했습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지도자로서 대한제국 개혁운동을 했습니다.
사진 29 : 1898년 3월 제1차, 6월 제2차 만민공동회, 사회자 이승만과 월남 이상재선생, 당시 이승만청년을 도움 감리교선교사들.
10월 제3차 만민공동회는 대한문에서 개최하여 최초 태극기 집회를 인도하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사진 30).
1899년 1월 9일 이승만청년이 혁명적 지도자로 급부상하자 조정 대신들은 고종황제가 반역지도자로 여기는 박영효 추종자들과 모의한 것으로 조작과 공작을 하여 대역죄로 체포를 당합니다.
1899년 1월 30일(월)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무혐의 석방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노역장에서 정치범 최정식과 뇌물범 서상대의 유혹에 넘어가 육혈포(권총)를 가지고 탈옥을 했다가 즉시 체포됩니다.
역시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다행히 죄인거포죄(罪人拒捕條, 총기휴대탈출죄) 종신형으로 목에 10kg의 칼을 차고 투옥이 됩니다.
                                                       사진 31 : 당시 칼 찬 죄수 모습.
1899년 2월 2일(목)경 이승만은 그제서 채플에서 종종 듣던 아펜젤러선교사의 설교를 기억하고
“하나님 내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하나님 내 민족을 당신께 맡기나이다”라고 기도하면서 회심합니다.
개종한 이승만청년은 성경이 너무 읽고 싶었는데,
마침 인도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가다가 조선에 잠시 들린 예일대학교 출신 George Sherwood Eddy선교사로부터 영어성경을 선물로 받습니다.
사진 32 : 평생 읽은 영어성경.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 쪽 복음 정도만 번역된 당시에 이승만청년은 감옥에서 영어성경을 통해 영어와 성경을 동시에 통달합니다.
사진 33 : 1900년 2월 22일(목) 이승만 회심 제1주년 기념, 감리교선교사들(아펜젤러, 벙커, 존슨, 노블)이 미국 국부 죠지 워싱턴대통령과 지도자 복장 촬영.
여러 선교사들이 넣어준 각종 기독교서적과 최고 전문서적과 정기 시사 간행물 등 약 600권 분량의 독서를 합니다.
영어사전을 알파벳 "F"까지 만들었습니다.
                                                    사진 34 : 옥중 집필 사전 원고,
사진 35 ; 1903년 2월 22일(주) 이승만 회심 제4주년, 이상재 전도 기념, 강원달 병보석 출소 기념, 언더우드선교사 촬영.
1904년 2월부터 6월까지 일본제국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국권을 찬탈하면서 한반도를 본격적인 식민지로 지배하게 되자 부패한 지도자들과 어리석은 백성들을 신앙과 민족정기로 깨우치고자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집필했습니다.
집필 초기 3월 20일(주)에 수감 중 이승만에게 보낸 감리교 George Heber Jones선교사의 편지입니다.
“지난 3월 13일(주) 나는 당신의 부친으로부터 고종황제께서 최근에 발표하신 특사 명단에 당신을 포함시키지 않았음을 들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발 절망하시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러면 그 분께서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나는 황제께서 당신에게 완전한 사면을 내리실 것과
당신이 출옥하여‘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는 우리(선교사)들의 노력을 도울 것을 고대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승만 답장입니다.
“정부의 현 상황은 점점 나빠져 가고 있으며,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출옥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세상 권세가 나를 누를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실현되리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으니까 저는 이런 상황에서도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시를 지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승만의 독립정신 책의 결론입니다.


사진 36,37,38 : 원본 결론 부분과 조선선교사를 대표하여 순교하신 아펜젤러선교사 대신 언더우드선교사 사진 게재, 1910년 출판본.
“이 교(기독교)로서 근본을 삼지 않고는 세계와 사통(국제통상)하여도 참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요,
외교를 힘써도 깊은 정의를 믿지 못할 것이요,
국권을 중히 여기도 참 동등 지위에 이르지 못할 것이요,
의를 숭상하여도 한결같을 수 없을 것이요.
자유 권리를 중히 하려도 평균한 방안을 알지 못하리라.
우리는 마땅히 이 교(기독교)로서 만사에 근원을 삼아 각각 나의 몸을 잊어버리고 남을 위하여 일을 하는 자 되어야
나라를 일심으로 받들어 영국 미국과 같은 나라와 동등이 되게 하며,
이후에 천국에 가서 다 같이 만납시다!”
건국(단기) 4237년(1904년) 6월 29일(수)

사진 39 : 독립정신 탈고 후 기념, 죄수가 영어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 40 : 출소 직전 안국선 이승린(이상재 아들)과 함께
1904년 8월 9일(화) 이승만은 선교사들과 민영환대감의 노력으로 미국 특사 파견을 위해 석방되었습니다.
                                      사진 41 : 이승만 석방을 마중하는 에비슨선교사.
19명 선교사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미국 유학, 죠지 워싱턴 2년 학사, 하버드 1년 석사, 프린스턴 2년 박사학위를 마칩니다.
                   사진 42 : 언더우드선교사 추천서, 언더우드선교사와 박사학위 모습.
이후 35년 동안 오직 독립운동에 매진을 하고,

1945년 10월 16일(월) 귀국하여 48년 8월 15일 독립정신의 책 그대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십니다.

사진 43 : 건국 선포식

                                                           
           사진 44 : 국부 이승만박사의 영원한 스승 아펜젤러선교사와 언더우드선교사.
                                                     사진 45 : 아펜젤러선교사 가족.

사진 46 : 아펜젤러선교사가 이승만청년이 배재학당 입학 당시 촬영한 서울 모습.
사진 46 : 배재학당 졸업식 즈음 이승만청년을 키운 1897년 초기 감리교선사들.
동북아시아에 미국과 같은 기독교 신앙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하겠다는 선교사들의 꿈을 성취한 국부 이승만박사.
사진 47 : 감옥의 이승만청년에게 건국 비전을 심어준 George Heber Jones선교사
이제 태극기 국민운동이 배출한 지도자 JTK와 함께 위대한 대한민국 역사를 회복하고,
그 분의 최후 소원인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을 통해 감옥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을 완성해야 합니다.

사진 48 : 그 분의 소원(1957년 제1군 사령부 훈련 방문)
사진 49 : 국부 이승만박사의 마지막 휘호, 統一最先(통일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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