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국민운동의 역사적 뿌리와 미래!


태극기의 힘!
사진 1 : 타임즈 표지에 그려진 태극기를 보라!(Time Magazine March 9,1953  Korea's Syngman Rhee, 휴전을 앞두고 전후 복구를 구상하시는 국부 이승만박사 )
 
태극기 국민운동으로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을 완수할 지도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이란
 
"그 분(국부 이승만박사)이 옳았고,
 
그 분들(국부 이승만박사와 그 분이 키운 군인 엘리트 지도자 한강기적 박정희대통령)이 이겼다"는 뜻입니다.
 
박근혜대통령 언론선동 내란 탄핵사건은 이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준비하다가 반통일세력들에 의해 최후의 반격을 받은 것이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고, 이기고 있고, 이길 수 밖에 없는 최후전쟁의 시작일 뿐이며,
 
대한민국 역사전쟁의 종착점이다.
 
역사왜곡으로 세뇌된 자들과 추종자들의 최후 반역이다.
 
역사에서 배우려면 역사를 제대로 잘 알아야 한다.
 
20세기 최고의 탁월한 세계적 지도자로서 사상과 이념과 인격적인 면에서 종종 비교되는
 
2차 세계대전 후 분단국가를 위대한 강대국으로 만든독일의 국부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867)와 대한민국 국부 이승만(1895-1965).
 
1.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헬무트의 콜의 독일통일 완성이 다 인가?
절대 아니다.
 
그들은 모두 국부 콘라드 아데나워에게 경의를 표한다.
 
'독일 통일의 진정한 아버지'는 국부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이기 때문이다.
 
2. 통일을 이끈 콜수상이 1996년 펴낸 자서전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Ich wollte Deutschlands Einheit)' 첫 장에서
 
"1990103일에 이루어진 독일 재통일,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아니면 우연 필연 그 아무것도 아니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역사학자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다음 스스로 대답한다.
 
"1989~1990년에 일어난 사건들은 아데나워의 견해가 옳았다는 것을 인상 깊게 확인시켜 주었다"고 말한다.
 
즉 통일은 우연도 필연도 아닌, 어느 특정 시기에 특정한 인물의 책임 있는 행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 특정인은 콘라드 아데나워다.
 
그리고 콜은 아데나워의 회고록 중 한 대목을 인용한다.
 
"소련은 자신들이 서방세계와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서방세계를 무릎 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조만간 깨닫게 될 것이다.
 
그처럼 평화적인 타협 속에 나의 희망이 담겨 있고 거기서 나는 기회를 보고 있는 것이다."
 
3. 브란트의 '동방정책'도 실은 아데나워가 1950년대에 추진한 서독 대외정책의 기본골격 '서방정책'에 대한 안티테제(서방정책 성공의 힘을 발판으로 둥구권 포섭정책)일 뿐이다.
 
만일 동방정책 때문에 독일 통일이 됐다고 말한다면 이는 독일이나 유럽 사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세계사와 현대사에 무지한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3. 통일 독일에서 브란트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점을 증명한다.
 
반면 국부 아데나워는 독일 역사상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존경을 받는다.
 
4. 놀라운 사실은 콘라드 아데나워와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은 오직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대통령이다.
 
더욱 경이로운 점은 동서독일의 역사적 상황보다 남북한의 세계사적 상황(6.25동족상잔까지 겪음)100배나 더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좀 아는 사람들은 아데나워는 이승만의 신발끈 정도를 매는 인물로 인식한다.
 
5. 대한민국이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이 되면 진정한 통일 국부는 이승만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6.25동란을 통해서 북한이 통일을 했으면 김일성이 통일의 아버지다.
 
그것은 논리나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현실의 문제다.
 
콜은 자서전에서 솔직하게 고백한다.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틈바구니를 뚫고 겐셔 독일 외무장관과 더불어 보여주었던 자신의 외교적 기지(機智)와 대담함을 자랑하기보다는
그 틀을 만들어준 아데나워에게 통일의 공을 돌렸다.
 
6. 세계에서 유일한게 국부를 존경하기는 커녕 폄하하고 왜곡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왜냐하면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고,
 
왜곡과 날조의 사악한 코브라 공산주의와의 치열한 전쟁을 아직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승리가 다가오고 있다.
                                       사진 2 : 동서통일 콜수상 자서전,
 


사진 3 : 서독과 통일독일의 국부 아데나워국부 이승만박사보다 1살 아래이며, 국부 보다 2년 후 소천)

국부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동시대 세계사적 영웅 지도자. 그러나 시대상황이 예수와 세례 요한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동서독일은 전후 분단되어 아데나워가 서독을 재건했고,

남북한은 분단되어 건국했고, 건국 후 국제적 내전을 겪은 후에 재건했다.

100배나 상황이 어려웠다.

                      사진 4 : 대한민국과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의 국부 이승만박사.
 

사진 5 : 1949년 서독 건국 초기 아데나워의 타임즈 표지. 신생 자유민주주의 서독을 국기가 독수리처럼 날아가는 것으로 표현.
 

사진 6 : 1951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처절하게 투쟁하는 신생국의 지도자 아데나워.
 

사진 7 : 1953년 타임즈 표지, 기독교자유민주주의 신생국으로 변모하는 서독
 

사진 8 : 1954년 타임즈,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정도로 강대국이었던 역사적인 든든한 뿌리에서 라인강 기적을 창조하는 신생국 서독의 모습.
 

사진 9 : 19501016, 6.25 동란 중 전쟁 지도자로서 국부 이승만박사의 모습.
 
그런데 이 사진은 1946년 초 돈암장에서 홀로 기거하시면서 제일 힘드시고 아프실 때 제일 초췌한 모습을 이용하여 묘사한 것입니다.
 


사진 10,11 : 1945년 조선호텔에서 머무시다가 1946년 돈암장에서 옮겨서 홀로 생활하시다 아프시던 모습.
 
결국 하지중장의 방해로 돈암장에서 쫓겨나 마포장으로 잠시 옮기셨으나
 
신탁반대와 세계 최초 UN 감시 하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 추진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자 다시 많은 후원자들이 생기면서 이화장으로 이사하심.
 
물론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극복하는 지도자의 고뇌와 아픔과 격정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오늘날의 언론과 마찬가지로 서양기자는 동양의 위대한 세계사적 영웅 지도자에 대해서 제대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1)33년 만에 다시 조국에 귀국하여 풍토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습니다.
 
2)국무부 알거 히스(소련 간첩)의 방해를 물리치고 맥아더사령관의 도움으로 혼자 귀국하여 돈암장에서 프란체스카여사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여 궁핍한 때입니다.
 
3)극심한 좌우대립과 군정사령관 하지중장의 간섭 방해 등으로 정치적인 홀로서기로 힘든 과정을 겪을 때입니다.
 

    사진 12 : 195339, 휴전을 앞두고 신생 대한민국의 험난한 재건의 모습을 표현.
 
앙상한 나뭇가지 맨 꼭대기에 외롭게 펄럭이는 태극기의 초라한 모습.
 
영국 런던 타임스의 사이몬즈기자도 같은 표현을 신문 헤드라인에 썼습니다.
 
전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회복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탄식했습니다.
 
1948UN임시위원회 단장으로 이승만박사의 설득으로 제헌의회 선거를 성사시켜 대한민국 탄생의 국제적 공로자였지만
 
195510UNKRA(유엔한국재건단)의 경제조사단으로 다시 입국한 인도대표 Menon전후 대한민국의 경제회복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똑같은 탄식을 했습니다.
 

                    사진 13 : 1951UNKRA 개소식 때에 연설하시는 국부 이승만박사.
 

                   사진 14 : 196222일 타임 표지, 인도 선거 당시 Menon박사.
 
그러나 누군가가 쓰레기통에 장미꽃 씨를 뿌렸고, 길러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대한민국과 인도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싸우고 투쟁하여 성취한 대한민국의 태극기 힘이 결코 최후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태극기는 북한동포까지도 품어주게 될 것입니다.
 
사진 15 : 6.25동란 절대절명의 위기에 평생 가슴에 품고 독립운동을 했던 태극기를 펼쳐 들고 외신기자들에게 대한민국을 도와달라고 호소하시는 국부 이승만박사.
 

사진 16 : 1950727, 동란 한 달 후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반격을 펼칠 때.역사적인 사진을 촬영한 한국인 종군기자와 기념.
 
앙상한 가지에 휘날렸던 태극기의 힘은 이제 미국 일본 통일독일을 추격하는 G4의 강대국으로 부상을 했습니다.
 
                                                     
          사진 18,19 : 그 분들을 이어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을 성취할 그 분들.
 
이제 북진자유(흡수)평화통일을 하면 대동강의 기적을 일으켜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이 아니라 미국과 함께 세계사 구속사를 지도 인도하는 G2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시금 뜨겁게 기도하면서 마지막 최후전쟁을 태극기 국민운동으로 찬란한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사진 20 : 대한문 태극기 국민운동의 진정한 대통령 후보 6번 조원진


진정한 지도자에게는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항상 머그믄다!
                                     사진 21 : 평양에 태극기 휘날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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