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개헌내란세력과 종북좌파, 그리고 대한애국당의 뿌리!

1952년 5.6,7월에 있었던 부산정치파동 일명 발췌개헌사건의 진실과 대한애국당의 태극기대한애국혁명!

사건의 배경입니다. 

1)38선을 중심으로 휴전선을 결정하기 위해 치열하게 국지전을 벌이면서 휴전 논의가 한창 진행되는 전시였습니다. 

2)여야 국회의원들이 한통속이 되어 내각제 개헌을 시도했습니다. 

건국된지 2년 만에 그것도 전시에 천년만년 국회의원을 해 먹고, 자녀들에게까지도 의원직을 물려줄 속셈으로 내각제 개헌 음모를 꾸몄습니다. 

3)내각제 개헌이 실패할 경우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존의 대통령 간선제를 통해 국부 초대 건국 대통령 이승만박사를 축출하고, 대신에 장면을 대통령으로 세워 정권교체와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생존, 백년대계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권력을 장악 유지 세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국부 이승만박사는 이순신장군의 살신성인 구국정신을 이어받고자 최초로 이순신장군 동상을 건립하셨습니다.

사진 1,2,3,4 : 1952년 4월 12일 진해 준공식 참석, 제막식, 국부의 기념사 모습 등 





사진 5 : 현재 모습


4)국부 이승만박사의 북진통일론은 사실 미국을 압박하여 휴전 협상에서 공산측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고, 

우리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기 위함이며, 

휴전 이후 국방안보와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최대한 얻어내려는 고도의 외교 군사 경제 전략이었습니다. 

5)휴전을 반대하는척 하면서 미국과 유엔군의 가능한 모든 군사력 경제력을 동원하여 북진멸공자유통일을 하려는 국부 이승만박사의 리더십을 미국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국부 이승만박사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미국에서도 이번 기회에 정권교체를 하여 자신들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장면정권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6)52년 말에 치러지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아이젠하워의 대통령 선거로 인해 선거에 집중해야 하는 투르먼민주당정부나 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아이젠하워공화당측이나 모두 강력한 리더십의 국부 이승만박사가 부담이 되어 자연스럽게 장면대통령 옹립 공작을 지원했습니다. 

7)북괴 공산당도 북진통일을 외치는 국부 이승만박사의 리더십을 제거하는 공작이 이루어져 "유시태"를 통해 

6월 25일 제2주년 동란 기념식(충무초등학교)에서 국부 이승만박사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격발 고장으로 실패했습니다. 

사진 6 : 유시태의 암살 시도 장면, 격발 불발과 옆에 있던 헌병에 의해 제압, 체포되고 수감되었으나 4.19 이후에 석방됨.

사진 7 : 체포장면


미국 CIA측에서도 암살공작이 있었습니다.

진해 해군기지 대통령 별장에서 낚시를 하며 정국을 구상하던 국부 이승만박사에 총격이 가해졌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고의적인 실패였습니다.

1945년 10월 16일(수) 이승만박사께서 맥아더원수의 전용기로 김포에 도착할 때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전담요원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CIA 고위 직책을 맡았던 George Mott(대령)는

1947년 5월 이승만박사께서 남한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자유민주주의교육과 UN을 동원한 건국(정부수립)에 대해 국민들에게 연설하는 일명 남선순행에 밀착 동행을 했습니다.

사진 8 : 1947년 6월 당시 순행 도시 중 하나였던 청주시의 현수막

Mott는 도시마다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2-3시간이고, 꼼짝하지 않고 이박사의 말을 경청하는 국민들의 모습과 이박사의 연설을 직접 듣고 이박사를 존경하고, 경외할 정도가 되었습니다(나중에 올리버박사가 쓴 국부 이승만박사의 전기에 서문을 썼는데 명문으로 미국 의회 사회과학박물관에 소장). 

즉 52년 암살작전의 실패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으나 Mott와 같은 분이 개입하여 실패케 한 것입니다.

사진 8,9 : George Mott의 47년과 49년 CIA보고서


사진 10,11 : G. Mott의 연구서(저널리즘의 대가)와 묘비.



국부 이승만박사께서 사면초가에 몰린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국민들의 자발적인 태극기 집회였습니다. 

1)애국애족의 국민들은 내각제개헌과 장명대통령 옹립 공작을 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성토와 소환, 국회해산을 외쳤습니다.

사진 12 : 1952년 5월 19일 국회의원 소환 시위

사진 13 : 1950년 6월 8일 국회의원소환장과 국회해산 청원서, 직전제 상하양원제 지지 등 국부 이승만박사에게 보내는 결의문.

사진 14 : 5월 26일 부산지역 계엄령을 선포하고 검문에 불응하는 국회의원들을 버스에 탄체로 연행.

2)국부 이승만박사는 당시 헌법에 국회해산의 권한이 있었지만 UN에 의해서 수립된 초대 제헌의회의 명예를 위해서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15 : 1950년 6월 12일 국개해산 집회

사진 16 : 1952년 6월 12일 임시국회장소 앞에서 국회의원성토 국회해산 우중에도 철야집회

사진 17 : 국해해산 태극기집회와 6월 25일 휴전반대 북진멸공자유통일 태극기 집회

사진 18 : 1952년 6월 25일 동란 제2주년 국부 이승만박사 지지 휴전반대 북진통일 시위

사진 19 : 1952년 6월 30일 일명 "민중자결단" 청년들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여 80여명의 반역 의원들을 연금하기도 했습니다.


3)국부 이승만박사께서는 이번 기회에 평생의 소원이었던 대통령 직선제(민주주의 꽃이할 할 수 있는 
국민의 직접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투표제도)와 통일을 염두해 둔 미국식 상하양원제로 미국과 동일한 형태의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고, 국민들도 내각제와 간선제를 반대하고 직선제와 양원제를 지지했습니다. 

사진 20 : 국부 이승만박사의 개헌안인 대통령 선출 직선제와 상하양원제 지지 태극기집회


4)국부 이승만박사는 무초대사를 불러 수백만 $가 든 검은색 007가방을 홍콩에서 북한공작원과 모 국회의원의 접선과정에서 압수했다고 보여주었습니다.

무초 대사는 사실은 미국 공작 자금일수도 있기 때문에 "미국의 공작도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국부 이승만박사를 다시금 지지하게 되었습니다(미8군 밴플리트장군의 역할도 컸음).

5)결국 야당의 내각제개헌과 장면대통령 옹립 공작이 실패하고, 일명 발췌개헌이라는 국부 이승만박사의 개헌안이 통과되고,

한반도 최초 국민직접선거에 의해 국부 이승만박사께서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사진 21 : 발췌개헌 통과 즉 내각제반란제압

사진 22 : 발췌개헌에 서명하시는 국부 이승만박사, 전시 중에 내각제 개헌 반역을 시도한 국회의원들을 제압했지만 국회해산을 하지 않고 명예를 지켜주었고, 얄밉기는 하지만 용서해 주시었습니다(장면, 조병옥 등).


상하양원제는 전시 중이라 추후에 하기로 했는데, 계속 여건이 안되 미루어지고,

박정희대통령각하께서 여의도에 국회의사당을 건립하면서도 상하양원제를 염두회 두고 하원회의실(현재 대회의실), 상원회의실(현재 예산심위실로 사용) 회의실을 두개로 건축했습니다.

2016년 10월 24일(월) 박근혜대통령께서 국회의사당을 방문하여 통일을 염두한 개헌(상하양원제 포함)을 논의를 선포하셨고,

그 날 저녁 JTBC의 태블릿 PC 거짓언론보도와 댓글여론조작으로 촛불난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상못한 태극기집회가 시작되었고,

북괴공작이 개입된 내각제반역세력과 종북좌파세력의 탄핵내란을 진압하고

급기야 대한애국당이 창당되고, 태극기대한애국혁명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포스터 1,2 : 1950년 9월 1일(금) 기습남침 전란 중에는 그래도 피난 국회(제1대 국회)를 열어 국부 이승만박사의 전시 리더십을 도와준 적이 있으나 제19대 국회는 반역 국회입니다. 


포스터 3,4 :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고 휴전 논의가 진행되자 제2대 국회의원들이 내각제개헌을 하려고 야합과 음모를 꾸몄으나 국민들의 태극기집회와 국부 이승만박사의 리더십으로 실패했습니다. 

포스터 5 : 
다시금 박근혜대통령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길만이 내우외환을 막고, 북진멸공자유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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