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2월 이승만박사의 VOA 영어연설

국부 이승만박사의 외교 진수와 문재앙의 거지 굴욕외교가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포스터 1 : 국부 이승만박사의 평양 방문과 문죄인의 평양수치


이승만청년이 1904년 8월 9일 한성감옥에서 나올 즈음에 헐버트선교사 등 선교사들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들으셨습니다. 

사진 1 : 한성감옥에서 출옥하는 이승만청년을 영접하는 세브란스병원장의 에비슨선교사(이 분도 일평생 이승만박사를 도와주는데, 자서전에서 이박사를 the great man이라고 칭송)


일본제국이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느니라" 즉


일본제국이 조선을 식민지하고 난 후에는 만주를 잡아먹고, 중국과 전쟁을 하고, 러시시와 인도를 넘볼 것이다. 

동남아시아를 장악하려다가 반드시 미국과 대결(전쟁)까지도 불사할 것이다"

일본제국의 가장 깊은 상처는 1854년 페리제독이 이끄는 함대 흑선(구로후네) 앞에 무릎을 꿇고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입니다. 

흑선에 놀라 이후 개방을 먼저하여 근대화에 성공하므로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승리하고 조선을 식민지화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2 : 흑선 함대를 이끌고 온 페리제독에 대한 공포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표현한 역사기록 삽화


그래서 일본제국이 급속히 부상하고,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떠오르자 야망의 끝과 최후는 미국과 한 판 전쟁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승만청년도 그 때부터 "일본제국이 미국과 전쟁을 해서 패망하는 것만이 조선의 독립과 새로운 나라의 건국이 가능하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때를 기다리던 이승만박사는 1941년 드디어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일본제국이 진주만이나 알라스카를 기습공격하여 미국과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쓴 책이 그해 7월에 출간된 "Japan Inside Out(일본의 실체(가면)을 벗긴다, 이후 JIO)"입니다. 

사진 3 : JIO 일본어판, 번역자가 박마리아여사였다(선교사들과 이승만박사께서 키운 이화여대 출신 천재적 여성 지도자 중 하나였으나 말년에 탐욕으로 멸망).


책이 출판되자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절대 불가능한 태평양을 건너 침공한다는 미일전쟁의 망상을 품은 어리석은 늙은이라는 조롱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12월 7일 일본제국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이승만박사는 일약 "선지자"가 되어 미국의 국제전략의 파트너와 조언자가 되었고,

JIO는 한국인 최초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루스벨트의 최측근 참모인 Harry Hopkins가 읽고 감동을 받아 카이로회담에서 "조선 독립"이 논의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 4 : 1938년 모습, 차 안에서 국제외교전략 조언, 백악관에서 가끔 함께 먹고 자고 할 정도의 최측근. 트루먼대통령도 조언.


이승만박사는 그 동안 결핍생활을 하시다가 인세로 엄청난 자금을 확보하자 더욱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했는데, 

1942년 2월 초 요즈음에도 유명한 미국의 국영방송과 같은 VOA에서 유명한 "독립투쟁 연설"을 녹음했습니다. 

물론 자신을 키워주신 선교사의 자녀들이 거의 대부분 국무부 국방부 특히 COI(OSS, CIA전신)의 주요 요인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도와줌으로 가능할 수 있습니다. 

VOA출현은 Gale선교사의 조카인 중국전문가 E.M. Gale COI 요원의 역할이 컸습니다. 
사진 5 : 1927년 중국 활동 당시 E.M Gale선교사(중국에 대해 용의 나라라는 개념을 사용)
 

이 때 방송한 연설을 녹화하여 비밀리에 한반도 전역에 방송했습니다. 

당시 경성방속국(KBS전신)에서도 비밀리에 청취하고, 비밀리에 보급하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는데, 그것이 유명한 "경성단파방송밀청사건"이라고 합니다. 

암울한 일제식민지에 이승만박사의 연설은 그야말로 태양요 단비요 시원한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때 생긴 민간 신앙이 "일본패망신봉자"였습니다(대표적인 인물이 조병옥박사).

즉 곧 일본의 패망을 믿고, 생존하기만 하면 이승만박사를 뵐 수 있고, 조서의 독립과 건국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이었습니다. 

친일파? 몇몇 악랄한 자 외에는 모두 강요와 생존을 위한 것이였습니다. 

조금만 수치와 모욕과 고난을 참고 견디면 해방과 광복을 보는데 어리석게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부 이승만박사와 관련된 행사(탄신, 건국, 추도)에 꼭 이 연설 육성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꼭 바로잡아야 할 것은 1942년 6월에 녹화 방송된 자료만을 이용하다보니 "6월"에 처음 방송한 것으로 잘못 소개되고 있습니다. 

즉 2월에 첫 방송이 되었고, 

이것을 녹화해서 계속 방송을 했는데, 6월 방송한 것만을 찾았기 때문에 자꾸 "6월 방송"이라고 잘못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1942년 2월 연설 육성 "영어본"을 오늘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소리가 작으니 볼륨을 올려야 합니다.

국부 이승만박사의 영어연설은 1954년 7월 미국 국빈방문 때 상하합동의원에서 행하신 것이 유명하고, 동영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외에 영어연설을 구하기 힘든데, 이번에 특히 유명한 VOA 영어본을 찾았습니다.


포스터 2,3,4: 외교천재 국부 이승만박사와 외교참사 문재앙.

제가 박근혜대통령을 존경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거의 국부 이승만박사 수준의 독서력과 외교력과 천재적 정치가의 능력을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영어음성 화일은 업로드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 때 당신의 이박사 활동사진과 함께 영어연설을 배경으로 해서 영상을 제작하여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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