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전쟁이라고 하는 역사적 이유!
역사는 정의와 진실로 흐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토록
대한민국의 역사는 북진멸공자유평화통일로 흐른다!
국민들도 정의와 진실이 있는 곳으로 몰리게 된다!
거짓과 불의 세력인 북괴대남공작과 종북좌파의 최후의 발악일 뿐이다.
태극기대한애국혁명과 대한애국당만이 건국 구국 호국 한강기적이 그랬듯이
한미혈맹과 UN총회를 통해서 한반도 역사의 완성을 함께 이루어낼 것이다.
제81차 포스터 1,2,3,4 : 역사가 거짓과 불의를 심판합니다.
북괴정권은 시작부터, 처음부터 거짓과 속임과 사기와 조작과 왜곡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종북좌파와도 거짓과 진실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끝내야만 하는 끝낼 수 있는 끝나가는 최후전쟁이며,
역사를 완성하는 역사전쟁입니다.
사진 1 : 金聖柱(김성주)가 曺晩植先生(조만식선생)과 만남에서 가짜 金日星(김일성)이라고 실토한 사실을 보도한 당시 신문.
1986년 4월 30일 조간 5면.
신문 왼쪽 타이틀이 "歷史(역사)는 흐른다"입니다.
사진 2 : 1945년 10월 13일(월) 고려인 2세 정치장교 미하일강소좌의 양복을 빌려입고,
강소좌가 매어준 넥타이를 처음 매고,
소련군 적기 훈장을 자랑하는 김성주대위와 옆에서 훈장을 만져보는 정치장교 매클레르중좌.
뒤에 평양의 어린이들이 몰래 훔쳐보고 있습니다.
사진 3 : 그 날 저녁 평양 요리(기생)집에서 소련 정치장교 스티코프가 조만식선생에게 처음으로 김성주를 상견례시켜주었고, 김성주가 돼지같이 음식을 쳐먹는 모습.
사진 4 : 10월 16일(목)에 이승만박사가 맥아더전용기로 김포를 통해 귀국하신다는 정보를 듣고,
스티코프가 부랴부랴 김성주를 김일성장군으로 10월 14일(화) 소련군 환영대회를 열어 등장시킴.
1945년 10월 14일(화) 평양 기림리 운동장에서 소련 스티코프가 처음 대중에게 김성주를 김일성장군으로 등장시키기 직전 소련군 환영식 무대에 선 조만식선생(산정현장로교회)과 박현숙장로(남산현감리교회), 옆에 미하일 강소좌.
당시 백선엽청년(25세, 평양사범 출신, 민족주의자)은 해방 후 귀국하여 조만식선생의 비서로 있으면서
김성주 일당(김책, 최용건, 김일)이 조만식선생을 방문을 할 때 안내를 했고,
그들은 채명신 김백일 등과 같이 북쪽지역의 최고 엘리트 청년이었던 백선엽에게 공산당정권 참여를 권고 협박했으나 강서출신 기독교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12월 월남을 하여 국군 장교가 됩니다.
사진 5 : 스티코프가 김성주를 착석시키고, 가짜 김일성으로 좀 나중에 등장시켰습니다.
사진 6 : 스티코프가 김성주를 등장 시킨 클로즈업 장면
사진 7 : 미하일 강소좌가 김성주의 일거수일투족 지시 감시 교육
사진 8 : 스티코프가 소련군의 만행으로 북한동포들에게 반감이 많아 소련군 적기 훈장을 달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달고 와서는 혼나고 훈장을 떼고, 통역과 지도원 역할을 한 미하일 강소좌가 번역해준 모스크바에서 보낸 연설문을 읽는 원본 사진(연설 내용의 핵심은 돈, 지식, 재능이 있는 친일파라도 공산정권에 참여하면 민족주의자가 된다, 즉 공산정권 수립에 사회 각 분야의 엘리트들이 대거 필요했다, 대부분 월남).
사진 9 : 김일성우상화를 위해 포토샵으로 조작한 사진(옆에 로마넨코군정사령관).
얼굴 등을 약간 미화했고,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소련군의 앞잡이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후 모든 사진에서 가슴의 훈장을 지워서 선전선동합니다.
사진 10 : 완전히 포토삽으로 조작한 세력이 태플릿 PC를 조작해서 촛불난동 탄핵내란을 일으킴.
사진 11 : 최초 포토삽 신문기사 조작, 김일성 등장 거짓 언론 여론조작 신문, 일명 JTBC 손석희의 할아버지!
즉 언론조작 촛불난동 탄핵내란은 최초로 조작을 시작한 세력의 마지막 작업입니다(서울 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의 소리가 일종의 본부와 지부). 그래서 최후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군의 모습으로 위장하기 위해 풍채가 있고 조작!
사진 12 : 기림리 운동장에 강제로 동원한 군중, 새파란 김성주가 김일성이라고 등장시키자 모두들 실망하여 귀가하는 것을 총칼로 위협하여 자리를 지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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