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렸다, 때가 찼다!
* 세계사적 천재 국부 이승만박사와 국부께서 12년 동안 키우신 아시아 나폴레옹 군인 최고 엘리트 박정희장군!
국부 이승만박사와 제5사단장 박정희장군(준장 ☆)이 만나는 역사기록 동영상입니다(첫 만남이라는 설명은 편집자의 오류).
https://www.youtube.com/watch?v=qXUEC3Earuo
국부 이승만박사와 제5사단장 박정희장군(준장 ☆)이 만나는 역사기록 동영상입니다(첫 만남이라는 설명은 편집자의 오류).
https://www.youtube.com/watch?v=qXUEC3Earuo
1955년 11월 3일(목) 인제 관대리 제3군단(군단장 송요찬중장☆☆☆ )의 예하부대 정예사단들을 방문할 당시입니다(국부 왼편에서 안내).
화면에 나오는 제1군사령관 백선엽대장(☆☆☆☆)은 박정희준장의 3년 후배입니다.
화면에 나오는 제1군사령관 백선엽대장(☆☆☆☆)은 박정희준장의 3년 후배입니다.
육군참모총장 정일권대장(☆☆☆☆)이 수행을 하셨습니다.
정일권대장은 재5사단장 박정희준장(☆)의 동기동창입니다.
정일권대장은 재5사단장 박정희준장(☆)의 동기동창입니다.
박정희장군의 생년월(1917년 11월 17일)이 같으나 4일(1917년 11월 21일) 아래 동생인 참모총장 정일권대장(☆☆☆☆)이 국부 오른쪽 옆에 있습니다.
당시 악수를 하면서 얼마나 자존심을 참았을까?
당시 악수를 하면서 얼마나 자존심을 참았을까?
즉 국부께서 1948년 10월 숙군사건으로 아시아의 나폴레옹 군인 엘리트 박정희소령(♧, 당시는 동그란 태극모양)를 살려주어 동년배들보다 진급이 약 10년 정도 늦었습니다.
군인 박정희는 1948년부터 1961년까지 약 12년을 침묵하고 인내로 실력을 키우고 결정적인 때를 기다렸습니다.
결국 정일권은 박정희대통령각하의 부하로 국무총리를 역임하면서 한강기적에 참여합니다.
역시 국부와 정총장을 왼쪽에서 안내하는 직속상관인 제3군단장 송요찬중장(☆☆☆)은 박정희준장(☆)의 1년 후배로
1961년 박정희소장(☆☆)이 5.16 혁명 성공 후 재건회의 최고의장 휘하에서 송요찬은 예편하여 초대 내각수반이 됩니다.
아뭏든 3군단 방문으로 국부와 박정희준장이 악수하는 장면을 캡쳐해서 사진으로 제작 액자를 만들어
2013년 10월 박근혜대통령님이 자카르타에 오셨을 때에 선물로 드렸습니다.
사진 1 : 동영 악수 장면 캡쳐
사진 1 : 동영 악수 장면 캡쳐
그리고 역사전쟁, 통일전쟁, 부패전쟁, 언론전쟁을 홀로 치열하게 치루시는 박근혜대통령님을 돕고자
2015년 2월 2일(제 자신의 생일이기도 함) 박근혜대통령 생일 때 귀국했습니다.
역사무지 역사왜곡으로 세뇌된 국민계몽 청년각성을 위해 역사진실을 가르치고,
역사바로잡기 강연 사역을 하기 위해 입국한 것입니다.
역사바로잡기 강연 사역을 하기 위해 입국한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두 분이 만나시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으로는 유일합니다.
1951년 9월 14일(금) 경기도 연천 제9사단 제창설식 때 국부와 밴플리트장군 앞에서 브리핑하는 사단장 장도영준장(☆)과 참모작 박정희대령(♧♧♧)의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2,3,4 : 브리핑 모습
사진 2,3,4 : 브리핑 모습
사진 5,6 : 훈련을 마치고, 떠나시기 전에 국부의 연설을 듣는 제9사단장 장도영준장(☆, 박정희의 6년 후배)과 참모장 박정희대령(♧♧♧)인데, 잘 안보입니다.
옆에 서 계신 분이 밴플리트장군(8군 사령관 대장 ☆☆☆☆)입니다.


사진 7 : 병사의 철모에 그려진 마크가 제9사단의 오리지널 초창기 마크이며,
이 때 아시아 최정예로 편성되어 1952년 10월 26-15일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을 박살 내어 그 때부터 백마가 그려진 백마부대가 됩니다.
그래서 박정희각하께서 백마부대를 월남에 파병하십니다.
이 때 아시아 최정예로 편성되어 1952년 10월 26-15일 백마고지전투에서 중공군을 박살 내어 그 때부터 백마가 그려진 백마부대가 됩니다.
그래서 박정희각하께서 백마부대를 월남에 파병하십니다.
사진 8 : 1956년 국부의 "약진백마" 부대 휘호
사진 9 : 이 때 국부께서 하신 연설이 "한국인은 똑똑해서 무엇이든지 배우면 할 수 있다(Can Do). 나도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했다, 여러분도 배우면 세계 최강의 부대가 될 수 있다"입니다.
당시 제9사단 재창설 아시아 최초 최정예 완편 사단 훈련 철모에 그려진 "Can Do"
이 연설을 박정희대령이 듣고, 혁명 성공 후 1961년 6월 8일 국부의 모교 배재학당을 방문했을 때 똑같은 연설을 하셨습니다.
"한국인은 똑똑해서 무엇이든지 배우면 할 수 있다(Can Do). 국부와 같이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 각 분야의 일군이 되라! 나도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이 연설을 당시 배재고 2학년생이었던 남재준(장군, 국정원장)학생이 중대장 생도로 기수단으로 가까이에서 들으셨습니다.
사진 10,11 : 1961년 6월 8일(목) 배재학당 방문 모습
사진 12 : 국부께서 가르쳐주신 박정희각하의 Can Do Spirit 책, 원래 왼손잡이로 왼손으로 방향을 가르키는 사진을 활용해야 하는데, 유일하게 한 번 오른손을 사용하신 사진을 이용.
1968년 11월 30일 수출의 날 기념식 때 유일하게 오른손으로 시설을 가르키는 모습
사진 13 : 대부분 왼손 사용, 대표적 모습.
사진 14 : 다시 동영상으로 돌아가 국부에 대한 경례 때에 박정희준장만 유일하게 지휘봉을 잡고 있습니다.
영상 뒤 부분을 보시면 국부 앞에서 왼손에 지휘봉을 잡고(박정희장군은 왼손잡이) 브리핑하는 분이 바로 박정희준장입니다.
이 영상은 두가지 국군소식을 결합한 촬영한 기록물인데, 고화질로 편집했습니다.
앞 부분은 국부께서 공군부대에 참석하신 장면인데, 오른손으로 왼손을 주무르는 모습이 나옵니다(국방장관 손원일제독 수행).
1899년 1월 9일에 24세의 청년 이승만이 체포 투옥되어 감옥에서 손가락 고문을 받은 후유증 때문입니다.
사진 15,16 : 초창기 12kg(사형수), 10kg(무기수), 8kg(유배수) 3가지 종류의 칼이 있는데,
이승만청년은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10kg의 칼을 찼습니다.
당시 서소문감옥(실형을 받기 전 일종의 대기 구치소)에서 찬 죄수의 모습,
선교사들이 이승만청년의 모습을 촬영할 수 없어 일반죄수의 모습을 촬영하여 이승만청년에 대한 선교보고 시에 사용.


사진 17 : 1903년 2월 22일 칼을 벗고 쇠사슬만 찬 모습,
언더우드선교사가 촬영을 하고, 이후 곧바로 쇠사슬에서도 해방이 됨.
사진 15,16 : 초창기 12kg(사형수), 10kg(무기수), 8kg(유배수) 3가지 종류의 칼이 있는데,
이승만청년은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10kg의 칼을 찼습니다.
당시 서소문감옥(실형을 받기 전 일종의 대기 구치소)에서 찬 죄수의 모습,
선교사들이 이승만청년의 모습을 촬영할 수 없어 일반죄수의 모습을 촬영하여 이승만청년에 대한 선교보고 시에 사용.
사진 17 : 1903년 2월 22일 칼을 벗고 쇠사슬만 찬 모습,
언더우드선교사가 촬영을 하고, 이후 곧바로 쇠사슬에서도 해방이 됨.
1898년 11월 대한문에서 최초의 태극기 국민 운동인 만민공동회를 통해 대한제국 개혁운동을 하다가 대역죄로 체포되었는데, 그마나 스승인 미국 선교사들의 탄원으로 더 이상 극심한 고문이나 태형은 면했습니다.
사진 18 : 태형 100대를 선고 받았으나 땅바닥을 치고 맞지 않음
사진 18 : 태형 100대를 선고 받았으나 땅바닥을 치고 맞지 않음
사진 19 : 이승만청년이 주최한 최초 대안문(1906년 대한문 명칭 변경) 태극기 집회,
이 때 연설이 Benjamin Franklin의 미국 독립 건국 당시의 유명한 연설을 아펜젤러선교사에게 배웠는데, 그것을 자신이 번역한 것임(United Stan, Divided Fall,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러나 손가락 고문의 후유증으로 날씨가 춥거나 고도로 긴장된 일이 있을 때에 손이 저리고 차가워져 주무르거나 입가에 대고 "호호" 부시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사실을 증명하는 모습이 영상 초반부에 나옵니다.
한마디로 국부께서 최고 군인 엘리트 박정희를 아시아의 나폴레옹으로 12년 동안 키우셨습니다.
현재 확실히 확인된 바로는 6번의 직접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1)50년 12월 소령에서 2계급 대령 특진,
2)51년 9사단 창설,
3)53년 11월 17일 36세 생일 기념으로 준장 진급시키고, 12월 24일 미국 최초 장성 유학 파견
사진 20 : 부산 하와이 경유, SA에서 잠시 여행하고(사진 모습, 이상국대령, 미 해군 MJ Luosey대령) 기차로 Alabama Fort Sill 포병학교 입학(6개월 공부 수석)
2)51년 9사단 창설,
3)53년 11월 17일 36세 생일 기념으로 준장 진급시키고, 12월 24일 미국 최초 장성 유학 파견
사진 20 : 부산 하와이 경유, SA에서 잠시 여행하고(사진 모습, 이상국대령, 미 해군 MJ Luosey대령) 기차로 Alabama Fort Sill 포병학교 입학(6개월 공부 수석)
4)55년 제5사단장, 56년 제5사단 동계훈련 중화기중대원(58명) 몰살로 예편 심사 때
5)57년 소장 진급,
6)60년 1월 군수기지사령관 발령,
사진 21 : 1960년 1월 20일 국부께서 청렴결백하고 정보 작전 인사 군사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박정희소장을 초대 군수기지사령관 임명
5)57년 소장 진급,
6)60년 1월 군수기지사령관 발령,
사진 21 : 1960년 1월 20일 국부께서 청렴결백하고 정보 작전 인사 군사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박정희소장을 초대 군수기지사령관 임명
여러번 간접적 만남과 접촉이 있었습니다.
국부께서 3번이나 직접적으로 살려주셨습니다.
1)48년 사형에서 49년 2월 무기징역 선고하고 , 다시 10년(당시 국부께서만 행사할 수 있는 사면권의 기준 형량) 감형시켜 사면권 발동하여 석방.
사진 22 : 군사재판선고문(결정적 혐의는 없으나 고위직(소령, 대부분 군부 공산주자들을 무식한 하사관급이 많음)으로 일단 무기형선고.

2)56년 초 동계훈련 때 중화기중대 58명 몰살(1명 통신병 유일 생존자) 사고발생 예편 심사에서 구제해 주시고, 오히려 사고처리를 잘 해서 제7사단장 발령과 소장 진급을 위해 육군대학 입교시킴.
3)57년 소장 진급 탈락 위기(경무대 곽영주 농간)
사진 23,24 :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동일한 비전과 딸과 아들의 성취


역사 포스터 1,2


사진 22 : 군사재판선고문(결정적 혐의는 없으나 고위직(소령, 대부분 군부 공산주자들을 무식한 하사관급이 많음)으로 일단 무기형선고.
2)56년 초 동계훈련 때 중화기중대 58명 몰살(1명 통신병 유일 생존자) 사고발생 예편 심사에서 구제해 주시고, 오히려 사고처리를 잘 해서 제7사단장 발령과 소장 진급을 위해 육군대학 입교시킴.
3)57년 소장 진급 탈락 위기(경무대 곽영주 농간)
사진 23,24 :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동일한 비전과 딸과 아들의 성취
역사 포스터 1,2
댓글
댓글 쓰기